오피니언 기고생각을 담는 그릇 '말'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 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 주장, 느낌을 입을 통해 말로 표현한다. 말은 그래서 그 사회의 정신문화를 가늠하는 척도다. 말이 거친 국가와 사회는 제 아무리 경제적 소득이 높아도 국민들의 삶은 강퍅하고 척박하다.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은 말 때문에 빚어지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정치인, 지도층이 쏟아내는 막말과 극언에 놀라고 분노하며 비속어, 은어, 외계어(?)에 함몰돼 있는 청소년, 젊은이들의 언어 행위에 혀를 찬다.

그래서 방송의 기능과 역할에 기대를 거는 국민이 많지만 방송은 사실상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다. 바르고 고운 말을 소개하며 표준어를 보급하는 순기능이 있으나 선정적·자극적 말들의 온상으로서의 역기능이 그에 못지않다. 시청률을 앞세운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의 걸러지지 않은 말 오염은 여전하고 요사이는 특히 종편과 케이블, 심지어 공영방송까지 비판에서 예외가 아니다. 허울만 교양 프로그램인 채 패널 등의 주목도를 앞세운 저급한 발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무관심보다는 미움을 사고 비난을 받더라도 관심받고 싶다는 한심한 세태, 딱 그 형국이다.

막말·비속어 사용 진행자 및 출연자의 삼진아웃제, 출연자의 언어 능력 라이선스제 등 방송 출연에서의 언행과 관련해 자격 요건 강화 등의 대책이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지만 진척이 없다. 방송은 우리 언어문화를 향상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지만 방송 프로그램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시스템적인 한계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이제 ‘나쁜 말을 더 이상 쓰지 말자’, ‘비속어·은어를 계속 쓰면 제재하겠다’ 식의 대증요법(對症療法) 방식으론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보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막말·비속어 사용 진행자 및 출연자의 삼진아웃제, 출연자의 언어 능력 라이선스제 등 방송 출연에서의 언행과 관련해 자격 요건 강화 등의 대책이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지만 진척이 없다. 방송은 우리 언어문화를 향상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지만 방송 프로그램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시스템적인 한계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이제 ‘나쁜 말을 더 이상 쓰지 말자’, ‘비속어·은어를 계속 쓰면 제재하겠다’ 식의 대증요법(對症療法) 방식으론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보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혼란의 가장자리에서 대안이 싹 튼다 했다. 우선 학교를 주목하고 싶다. 문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틀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다. 언어생태계를 변환시키는 국어 학습 현장의 탈바꿈을 제안한다. 초·중·고교 학급에서 국어 교과목 일부 시간(주 1회 이상)을 언어예절과 말하기 수업으로 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사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가(자원봉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수업을 지도하는 직장인 및 회사원에게는 해당 기업, 기관에서 유·무급 출장·휴가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신념, 무엇보다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언어 습관과 능력을 배양한다는 목적 의지만 분명하다면 못 할 이유가 없다. 실제 북유럽 나라들이 실행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기 및 언어예절 등을 연극이나 팬터마임 등 역할극 형태로 학생 친화적이고 새로운 접근 방법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실제 실험 및 일상 체험에서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읽기 교육의 부활 및 강화가 시급하다. ‘말 잘하기’에 앞서 ‘제대로 읽기’가 자리한다. 언제부턴가 학교 현장에서 ‘정확하고 아름답게 읽기’라는 가치가 사라졌다. 말을 제대로 다루고 부리기 위해서는 읽기 능력이 필수다. 이를 위해 발음·발성 교육, 리딩(reading) 기술 향상 등을 역시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고 수행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 종사자와 전문 인력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커리큘럼으로 안착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방송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정보·재미 중심의 프로그램 생산자로서의 정체성(正體性)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 중심, 상황 중심의 말하기 및 언어예절을 보급하는 첨병 역할에 적극 나서고 학교 현장과 연계해 시너지를 내야 할 것이다. 학습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읽기 및 말하기 상황을, 연출자 위주가 아닌 수용자 중심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화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법론을 개척할 것을 주문한다.

아울러 어문학자, 음성언어 전문가, 커뮤니케이션 학자 등의 전문가 풀을 치밀하고 역동적으로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임무도 요구된다. 정치인, 지식인, 명망가 등이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근사하고 따뜻하게 말하는 모습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를 우상향시키는 노둣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강성곤 /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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